
다양한 주식과 후식이 모두 고만고만한 갈색 깡통에 담긴 미군 야전식 <폴매슈번-위키미디어>
군대란 역시 약간의 잘못이라도 그냥 호락호락 넘어가는 경우가 없었다. 따끈한 통조림 식사를 준비하면서 각종 후식 깡통마저도 몽땅 푸욱 삶아버린 어이없는 실수는 차치하고라도, 그렇다고 해서, 난처해진 현장에서 아무 말도 없이 사알짝 줄행랑을 친 것은 군인으로서 떳떳하지 못했다. 작업은 끝났지만 소대로 돌아가라는 별도의 지시도 그때까지 없었기에, 좀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호출을 받은 김문석은 아직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보애즈 교관에 의하여 중대 천막으로 끌려갔다. 교관들의 구수 회의가 열렸다. 그제서야 겨우 사태를 파악한 보애즈 교관은 박장대소와 더불어 뜻밖에도 고문관을 옹호하였다. 십중팔구 정직한 실수(Honest Mistake)[아니스ㅌ 미스테잌]로 야기되었고, 임무도 마친 상태였고, 창피해 사라진 것이니, 중대한 잘못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보애즈 교관은 논리적인(Logical)[라지컬] 이유를 계속 늘어놓았다. 전깃불 아래였으나 그래도 상당히 어두워서 갈색 통조림 윗면에 검은 활자로 인쇄된 영어 글자가 잘 보이지도 않았을 테고, 뚜껑을 잘 보고서 주식 깡통만 선별적으로 데워야 한다는 간단한 사실 조차도 영어 소통 능력의 부재로 말미암아 몰랐을 터이므로, 의도적인(Intentional)[인텐셔널] 실수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여, 중대 차원의 공식적인 징계보다는 자신이 알아서 적절한 조치를 내리겠다고 다른 교관들을 설득하였다. 그달치 봉급의 25%가 깎이면서 기록까지 영원히 남는 제15조(Article 15)[아’리클 퓦티인] 벌칙을 면하는 순간이었다. 애틋한 부하 사랑이었으나, 그 적절한 조치라는 표현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도, 그의 언어적 고민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다.
아니나 다를까, 보애즈 교관은 더욱 매몰차게 그를 다루기 시작했다. 중대 천막에서의 부드럽던 태도와는 전혀 달리, 그를 이해하고 봐주는 구석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영어는 영어 그리고 훈련은 훈련이라는 그만의 청교도적 원칙을 고수하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받게끔 되었다. 해서, 그는 아무런 군소리도 내지 않으며 더욱 열심히 보애즈 교관이 내리는 체벌을 달게 받았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체벌은 아니나 몹시 힘들고 지치는 작업이므로 다들 요리조리 피하는 아주 색다른 임무가 하나 있었다. 훈련 기간이 총 6주 즉 42일인데, 소대원 40명 중에서 하루에 한 명씩 차출된다고 치면, 거개에게 한번씩만 차례가 돌아가는 것이 순리였다. 허나, 그는 느닷없이 상설 대타(Substitute)[썹쓰티튜웉]로 지명되는 바람에 네 번씩이나 그 지겨운 일을 해야만 했다.
보애즈 교관의 그에 대한 소위 적절한 조치였다. 절간의 주지 스님이 새파란 행자에게 잘 내리는 끝도 없을 듯한 고행과 같은 속 깊은 것이라 여겼다.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그의 팔목과 발목을 엄습할 때마다 그는 문득 눈을 지긋이 감았다. 서부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던 중대 천막에서의 보애즈 교관을 떠올렸다. 그렇게도 열나게 부하를 대변하던 상기된 그리고 믿음직한 얼굴이었다.
각설하고, 그것은 KP[케이피]라는 주방 따까리(Kitchen Personnel)[키친 퍼’쓰넬] 노릇이었다. 천여 명씩이나 되는 훈병들이 한꺼번에 군식(Chow)[차우]을 먹는 대형 군식당(Mess Hall)[메쓰 호올]의 대형 부엌에서 기간병 요리사들이 이것저것 마구 시키는 잔일을 흡사 노예처럼 찍소리도 없이 새벽 4시부터 자정까지 허겁지겁 장장 20시간 동안 정말 하루종일 하는 고된 노동이었다.
주방 따까리로서 그가 주로 맡아서 행하는 일은 끝도 없이 지긋지긋하게 밀려오는 접시와 쟁반을 뜨거운 비눗물로 깨끗하고 반들반들하게 닦아내는 역할이었다. 물론, 상업용 접시 닦는 기계가 있었으나, 잠시도 쉬지 않는 장비와 함께 사람도 같이 보조를 맞추면서 부수 업무를 수행해야만 되었다. 사실, 주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밖에 없었다. 다 영어를 못하기 때문이었다.
철반(鐵反)(Irony)[아이어’니 or 아이러니]이었다. 이태리 식당에서 접시를 닦는 직업이 싫어서 더 나은 직장을 구하려다 입대했는데, 또 그만 접시를 닦고 있는 처량한 자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제아무리 도망쳐 보았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한계를 깨닫는 허탈한 경험이었다. 하긴, 접시를 닦지 않으면서 미국에 사는 간 큰 남자는 거의 없을 것이렷다.
공장처럼 돌아가는 군식당에서의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그는 흥미로운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하얀 제복을 착용한 요리사 하나가 구석진 책상 앞에 앉아 전화 번호부처럼 두툼한 책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전세계에 깔려진 미군의 일 년치 식단(Menu)[메뉴]과 조리법(Recipe)[레씨피]이 깨알같은 글자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엄청나게 치밀한 계획성에 그저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다.
요것조것 성가시게 주문할 것도 없이, 우리 부대원 여기 몇 명 있다고 그냥 알려만 주면 매일매일 바뀌는 다양한 식단에 맞춰 그때그때 체계적으로 모든 식재료가 자동으로 공급되는 모양이었다. 수십만 수백만의 거의 모든 미군 병사들의 하루 세끼 군식을 그것도 어디에 주둔하든지 차별하지 않고 모두 똑같은 음식으로 제공한다는 것은 엄청난 조직력이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어나라, 김아! 너 또다시 주방 따까리 임무를 받았어.”
(Get up, Kim! You’ve got a KP duty again.) [게 렆, 킴! 유 가 러 케이피 듀리 어게인.]
불침번을 서던 동료가 그의 귀에다가 나즈막이 속삭였다. 새벽 3시였다. 그 시각에 일어나기란 보통 싫은 일이 아니었다. 허나, 잘못의 죄값이므로 당연지사나 자업자득이라고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다들 취침 중이므로 불도 켜지 못한 어둠 속에서 조용히 군식당으로의 출근을 준비했다. 그도 인간이었다. 고달펐다. 사회 복귀를 위한 잔꾀를 부리기로 나름대로 작심하는 순간이었다.
미군 돌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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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김의 미국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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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으로 옮기는 언어 사랑
볼드체 = 고딕체 = 딴딴체 = 새로운 한글 단어
[ 딴딴체 + 삐딱체 + 보통체 ] = 영소한표 = 영어의 소리 한글 표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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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김의 농담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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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밝은 곳으로 나오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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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쯤에서 당신이 직접 더욱 밝은 곳으로 나오시지요.
통 큰 마음으로 당신이 바깥 세상으로 나들이를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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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곳으로 나오는 당신의 진심이 역사를 바꿀 것입니다.
이제 이쯤에서 당신이 직접 더욱 밝은 곳으로 나오시지요.
당신의 건강이 허락할 때 밝은 세상을 직접 확인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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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당신이 예전에 약속한 대로 성의를 보일 때입니다.
이제 이쯤에서 당신이 직접 더욱 밝은 곳으로 나오시지요.
대의를 품고서 나오는 당신을 해코지할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철저한 안전 보장을 할 것입니다.
다시 하나가 되는 길로 가자는데 마다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제 이쯤에서 당신이 직접 더욱 밝은 곳으로 나오시지요.
해나 달이나 별이나 구름이나 강물이나 당신을 보시지요.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렇고 흘러갑니다.
당신이 마음을 비우고 발걸음을 한다면 세상이 바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