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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의 속도>
![time[1].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30/11630/2/time%5B1%5D.jpg)
새해가 되고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시간은 역시 빠르게 지나간다.
이번에도 한 달이 금방 지나가고 1년이 금방 지나갈 것 같다.
어린 나이엔 1년이 별로 짧지 않았으나 나이를 먹을수록 1년이 점점 더 짧아진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에 속도가 있다면 그 속도는 시속 몇 킬로미터나 될까?
시간의 속도는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빠르게 지나가기도 하고 느리게 흐르기도 한다.
친구들과 재미있게 보내는 저녁 시간은 금방 지나가나
외롭게 혼자 보내는 밤은 더디게 지나간다.
즐거워하는 시간은 짧으나 괴로워하는 시간은 길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놀고도 조금 밖에 놀지 않았다고 말하나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든지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는 1초가 영원같이 길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몸 속의 생물학적 시계가 점점 더 느려진다고 한다.
그래서 노인들은 무슨 일을 해도 동작이 느리고 별로 한 일 없이 하루해가 진다.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 심리에 따르는 주관적인 시간도 있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든지 할 일이 별로 없든지 누구를 기다리는 사람에겐
시간이 느림보처럼 지나간다.
그러나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지난 세월이 빨리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소식을 기다리고 애인을 기다리던 지루한 시간도
근심 걱정과 고생으로 얼룩졌던 세월도 매우 빨리 지나갔다고 아쉬워한다.
2.<엠마 크뢰벨(Emma Kroebel)이 본 1905년의 조선>
![kreobel,emma_1909[1].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30/11630/2/kreobel%2Cemma_1909%5B1%5D.jpg)
1905년 우리 나라의 국호는 대한제국이었다. 우리는 그 당시 고종 임금을 중국식으로 황제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때 우리 나라에 와서 1년 동안 임시로 궁중의전 담당관을 지낸 매우 총명한 독일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엠마 크뢰벨(Emma Kroebel)이라고 했다.
그녀는 국제 정세를 비롯하여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교육 예술 풍습 등등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분야를 속속들이 꿰뚤어 보고 있었다.
그 녀는 독일로 돌아가자 이 경험을 책으로 펴냈는데 책 제목은 "내가 어떻게 조선의 궁정에 들어가게 되었는가(Wie ich an den koreanischen Kaiserhof kam)"였다. 우리 나라에서 단 1년 밖에 살지 않은 외국인이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우리 모습을 분석한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어쩌면 모든 것이 지극히 당연하니 기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방인에게는 그 모든 것이 기록의 대상이 된다.
1909년에 베를린(Berlin)에서 이 책이 나오자 미국의 뉴욕 타임스에서 최소한 두 번이나 이 책이 거론되었다. 이 책이 미국에서 언론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당시 미국 대통령인 루스벨트의 딸이 조선에 왔던 이야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약혼자와 세계 일주를 하던 중에 조선에 들린 미국 대통령의 딸을 우리 나라사람들은 "엘리스 공주(Princess Alice)"라고 불렀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영국 공주처럼 "엘리스 공주"도 국빈으로서 성대한 만찬에 초대를 받았다. 궁정의 대신들과 외교관들을 비롯하여 수백명이 예복을 입고 그녀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는 예를 갖추어 나타나지 않았다. 승마복을 입은 엘리스 공주는 약혼자와 함께 말을 타고 먼지를 일으키며 연회 자리에 나타났다. 그녀는 도착하자 마자 여행자들이 하는 것처럼 스냅사진을 몇 장 찍고 차 한 잔을 마시고는 아무 인사도 없이 다시 먼지를 일으키며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국빈대접을 해 주었으나 초대받은 사람이 이렇게 무례하게 군 것은 역사상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엠마 크뢰벨은 그 책에 썼다. 이것이 루스벨트 대통령 딸에게까지 전해지고 쌍방 분쟁이 생겼으며 뉴욕 타임즈는 이것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구한말의 우리 나라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 데 있다. 러시아와 일본이 대한제국을 식민지화 하려고 전쟁까지 일으켰으며 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무자비하게 대한제국을 손에 넣는 이야기가 나온다. 민비의 시해 사건도 나오고 무능한 황제와 총명한 엄비, 일본으로 볼모 잡혀간 비운의 왕자 이야기도 나온다.
그 녀가 조선 궁중에 도착하여 보니 프랑스산 독일산 샴페인과 포도주가 넘쳐흐르는 연회가 자주 열렸다. 이것은 비용의 측면에서 볼 때 프랑스나 독일에서의 연회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당시 고종황제를 비롯하여 궁중의 모든 관리들은 서양문물에 익숙해 있었다. 원래 서양 소개와 의전을 담당하던 어느 프랑스 여인 한 사람은 황제의 신임을 독차지 하여 국정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외교관가에서는 그녀를 "무관의 여황제'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 당시엔 이미 프랑스 학교 독일학교들이 있어서 조선의 인재들을 길러 내었는데 독일 학교의 브라스밴드는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 악보를 배워 서양 음악을 연주한 악단이 되었다. 궁중엔 영어 불어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조선 사람들도 있었다. 이 모든 변화는 제물포항구가 외국에 개방된 이후에 생긴 것들이다.
엠마 크뢰벨은 조선인들의 생김새, 남녀들이 입는 의상을 겉옷과 속옷을 다 망라하며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출가한 조선 여인들의 고달픈 삶을 그리고 조선 남자들이 첩을 두는 것도 기술했다.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사는 흙벽돌을 쌓아 지은 작은 집과 그 내부에 무엇을 놓고 사는지, 난방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매우 상세하게 설명했다.
조선의 재래 종교, 기독교 선교사의 활동 등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들면서 소개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은 어떻게 치르고 제사와 삼년상을 어떻게 치르는지 하는 것까지 조선사람들을 능가할 정도로 상세히 기술했다.
이 책의 끝 부분은 일본이 무력으로 우리 나라를 조금씩 조금씩 목조여오는 내용이다. 무능한 황제는 국력을 키우지도 못하고 국민을 돌보지도 못하고 서양 문물을 익히는 한가로운 일이나 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막다른 골목에 쫓겨 무장해제가 되고 왕이고 신하고 할 것 없이 한 장소에 감금되어 통치권을 넘겨주는 일에 서명하고 말았다. 이름만 국가 원수이고 실권은 하나도 갖지 못한 조선의 마지막 황제, 일본으로 끌려간 총명하나 비운의 주인공인 왕자, 분개하여 자살하는 신하, 대부분의 비겁한 신하들...
엠마 크뢰벨은 그러나 무자비한 일본 점령군들에 대해 우리처럼 분개하지 않았다. 일본은 조선에 사방으로 철도를 놓아 주어 여행과 물자 운송에 혁명을 가져다 주었다고 했다. 농로를 넓히고, 수로를 내었으며 식량 증산 기술을 가져다 주었다고도 썼다. 황제가 가진 땅을 토지개혁을 통해 국가에 귀속시켰다고도 썼다. 국권을 일본에게 빼앗기기는 했지만 일본은 여러 가지 개혁을 통해 미개한 조선을 개발시켰다고 썼다.
훗날 조선 총독 이토가 암살되었을 때 엠마 크뢰벨은 자기의 저서 후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표명했다. 그녀에게는 독일이라는 나라와 독일 문화에 경의를 표하던 이토가 싫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티에 그녀를 초청하여 정중히 대해 준 이토를 싫어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훗날(1970년 대)에 김일성의 환대를 받았던 독일의 여류 작가 루이제 린저가 생의 끝날까지 북한을 낙원이라고 칭송하던 것과 통하는 바가 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1905년에 처해 있던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상세히 설명한 귀한 자료다. 모든 분야에 걸쳐 군더더기 없이 정곡을 찌른 이 책은 외국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우리 모습의 거울이 아닌가 한다. 이런 책은 몇 부로 나누어 시사 잡지에 연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새 시대에 구한말의 슬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2008년 1월 17일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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